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시작된 거대한 ‘파도’는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넘어 세계를 집어삼켰다. 디지털 디자인 회사 디스트릭트(d’strict)가 지난 4월 2022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웨이브’에 이은 ‘웨일 #2’로 2년 연속 커뮤니케이션 분야 금상을 수상한 것이다. 불과 2년 사이, 디스트릭트와 이성호 대표는 실험적 퍼블릭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세계 ‘최초’를 지나 세계 미디어아트의 코어(core)가 되었다. 

 

※ 아래 내용은 <리더피아> 2022년 7월호 기사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디스트릭트(d’strict) 이성호 대표
디스트릭트(d’strict) 이성호 대표

 

2020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광장. 가로 81m, 세로 20m인 농구 장 4개 면적의 초대형 ‘케이팝 스퀘어’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거대한 수족관과도 같은 유리 상자 안에는 멈추지 않는 파도가 담겨 있었다. 유리벽에 부딪혀 포말과 함께 부서지는 파도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영상이 공개되는 시간이면 광장 벤치는 ‘물멍’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5월, 해당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자 SNS에서 화제가 되며 하루 만에 700만 뷰를 기록했다. 디스트릭트, ‘웨이브(WAVE)’ (2020), 이성호의 이름이 세계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핫 아이콘이 되는 순간이었다.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로 혁신적 공간 경험을 디자인하는 디스트릭트’의 전환기는 이렇게 찾아왔다. 

 

2020년 실험적 시도로 선보인 퍼블릭 미디어 아트 ‘웨이브’ 전시 전경. 실감 콘텐츠의 퀄리티도 놀랍거니와 회사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역량을 홍보하기 위해 상업성이 배제된 ‘공공 예술’ 방식을 선택한 것 역시 획기적 행보였다.
2020년 실험적 시도로 선보인 퍼블릭 미디어 아트 ‘웨이브’ 전시 전경. 실감 콘텐츠의 퀄리티도 놀랍거니와 회사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역량을 홍보하기 위해 상업성이 배제된 ‘공공 예술’ 방식을 선택한 것 역시 획기적 행보였다.

2020년 ‘웨이브’가 (주)디스트릭트코리아(이하 디스트릭트)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성호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나. 
공인회계사로 근무하다 2007년 병역특례제도에 따라 산업기능요원으로 디스트릭트에 입사했다. 2년 2개월의 대체복무 기간이 끝난 후 회계법인으로 돌아가지 않고 디스트릭트에 남았는데, 이것이 첫 번째 터닝 포인트다. 당시 20대 후반이었고, 남들하고 똑같은 길을 가는 것에 반발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 회계법인 안에서 파트너가 되고 승진도 하면서 회계사로 사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잔류를 결정했다. 
두 번째 터닝 포인트는 2016년에 디스트릭트 창업주분들의 ‘회사의 대표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수락한 것이다. 당시 회사의 재정 상태 등 여러 상황이 좋지 않았던 만큼 제안을 받아들이는 선택이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대표가 되고 난 다음에는 어떠했나.
3~4년 동안은 계속 어려웠다. 2017년과 2018년에 중국 기업과 B2B(기업 간 상거래) 사업을 크게 추진했는데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직원들 급여조차 주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회사 의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시도가 필요했다. 바로 ‘웨이브’와 아르떼뮤지엄이었다. 비록 회사가 몇 차례의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디스트릭트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유능한 크리에이터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주 일만 하기보다 우리의 것, 퍼블릭 미디어 아트 ‘웨이브’를 통해 디스트릭트의 역량을 홍보하는 쇼케이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아르떼뮤지엄이라는 몰입형 체험 공간인 미디어아트 전시관 사업을 결정했다. 이 두 가지 결정이 세 번째 터닝 포인트다. 두 프로젝트가 공개되고 굉장히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면서 디스트릭트가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재정 상태도 급속도로 좋아졌고. 이 두 가지 결정은 나 개인뿐 아니라 디스트릭트가 회생하는 데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선례가 없는 길이었는데, 디지털아트와 디스트릭트의 미래에 대해 확신이 있었나.
디스트릭트는 1세대 웹 에이전시로, 디지털아트 개념으로 접근한 것은 사실 몇 년 안 되었다. 그럼에도 디지털 콘텐츠가 활용될 만한 분야가 확장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2009년부터 웹 에이전시 관련 일은 아예 접고 공간 기반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 중심으로 전환했다. 디지털아트 역시 우리나라 1세대 기업인 셈이다. 유사한 업종의 회사 중 업력도 가장 길고 레퍼런스도 가장 많다. ‘웨이브’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이후 해외 이곳저곳에서 많은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 디스트릭트의 결과물에 대해 해외 고객사들도 매우 만족해하고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 내가 예측한 것들이 얼추 맞아떨어지고 있다.

1. 삼성전자와 협업으로 ‘세계의 광고판’이라 할 수 있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매시 정각에 ‘워터폴엔와이씨’를 선보였다. 2.2021년 7월에 공개된 ‘웨일 #2’로 최근 2022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2021년 ‘웨이브’가 최고점을 기록하며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2년 연속 영예를 안았다.
1. 삼성전자와 협업으로 ‘세계의 광고판’이라 할 수 있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매시 정각에 ‘워터폴엔와이씨’를 선보였다. 2.2021년 7월에 공개된 ‘웨일 #2’로 최근 2022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2021년 ‘웨이브’가 최고점을 기록하며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2년 연속 영예를 안았다.

‘웨이브’가 디스트릭트 직원들에게 성공 경험을 주고 자신감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이성호 대표에게는 무엇을 남겼는가. 
대표직 제안을 수락한 순간부터, 물론 그 이전에도 같은 마음으로 일했지만, ‘회사의 성공=나의 성공, 회사의 실패=나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웨이브’로 디스트릭트가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이런 인터뷰도 그렇고, 직원들 급여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우리 회사의 역량을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 봐. 내가 얘기했잖아. 여러분은 훌륭한데 그동안 회사가 경영을 못해 어려웠던 거지, 다들 알아주잖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 역시 내가 가졌던 믿음이 맞았구나, 확신했다. 

이성호 대표의 말대로 2020년 ‘웨이브’는 세계 디지털 미디어 아트 시장에 디스트릭트의 물결을 가져왔다. 전 세계 언론과 SNS에서 화제가 돼 단일 영상 하나가 1억 뷰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해외 주요 도시, 기업, 미술관 등 옥외 광고 담당자들의 문의가 줄을 이었다. 디스트릭트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선보인 퍼블릭 미디어 아트 ‘워터폴엔와이씨(Waterfall-NYC)’(2021)도 그중 하나였다.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자리한 타임스스퀘어는 일일 최대 35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세계의 광고판’이라 불리는 곳이다. 삼성전자와의 협업으로 타임스스퀘어 건물 외부 벽면의, 4개의 스크린으로 구성된 높이 102.5m의 초대형 전광판에서 매 정시에 1분 동안 장대한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도시 한복판의 초현실적 장관은 뉴욕 시민은 물론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같은 해 7월, 타임스스퀘어에서 선보인 ‘웨일 #2(Whale #2)’(2021)도 연이은 화제를 낳았다. 광장을 밝히는 초대형 전광판을 3D 입체 공간으로 탈바꿈해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역동적으로 춤을 추는 고래를 표현한 퍼블릭 미디어 아트다. ‘웨이브’부터 ‘웨일 #2’에 이르기까지, 도시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대자연의 압도적 풍경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찬탄과 위로, 휴식을 선사했다. 디스트릭트는 ‘웨이브’와 ‘웨일 #2’로 2021, 2022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2년 연속 커뮤니케이션 부문 금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공공장소에 미래적 디지털 내러티브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디지털아트의 범주를 재정의했다”는 심사위원의 찬사가 덧붙여졌다. 이 수상으로 디스트릭트는 디자인 인덱스에서 캠페인 분야 세계 1위, 문화 전시 분 야 세계 4위에 오르며 위상을 더욱 공고히 했다. 

‘웨이브’로 회사 역량을 선보인 것과 동시에 2020년 9월, 제주 애월읍에 국내 최대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 제주(ARTE MUSEUM JEJU)’도 개관했다. 스피커 공장이었던 부지를 리뉴얼해 바닥 면적만 4600m2, 최대 높이 10m에 달하는 실감 콘텐츠 전시장이었다. 총 10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전시 작품을 모두 감상하려면 최소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시공을 초월한 자연’을 콘셉트로 꽃(FLOWER), 정원(GARDEN), 해변(BEACH), 폭포(WATERFALL), 웜홀(WORMHOLE), 별(STAR), 사파리(NIGHT SAFARI) 등이 외부의 빛을 완벽하게 차단한 공간 안에서 환상적인 전경으로 펼쳐졌다. 아르떼뮤지엄 제주의 상업적 성공을 기반으로 2021년 8월 전남 여수와 2021년 12월 강릉에도 아르떼뮤지엄 2호와 3호가 문을 열었다. 

2020년 9월 국내 최대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 제주’가 첫선을 보였다. 제주에서의 상업적 성공은 곧이어 여수, 강릉의 아르떼뮤지엄 2호, 3호로 이어졌다. 상단 좌측 사진이 아르떼뮤지엄 제주, 우측이 아르떼뮤지엄 강릉의 외관이다. 

아르떼뮤지엄은 ‘라이브 파크(Live Park)’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었다. 창업주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내가 조근조근 말로 설득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경영진이나 동료들도 다 알고는 있었는데, 고객사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그 결과물만 납품하는 비즈니스만으로는 회사가 성장하거나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힘들다. 창업 초기부터 1년에 수십 개씩 웹사이트 만들어주는 일을 쳇바퀴 돌 듯이 계속해도 연 매출 100억원 이상 올리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돈도 떼어봤다. 우리 콘텐츠로, 우리가 자고 있어도 혹은 하루가 시작되면 수익이 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라이브 파크’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유다. 당시 실패로 끝났고, 2015년 ‘플레이 케이팝’이라는, K-팝 콘텐츠를 사용자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공간 프로젝트도 실패했다. 두 번 실패 했지만 여기서 답을 찾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건 삼세 번이다. 두 번 실패했으니,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까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절대 망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이렇게 B2B 중심이 던 디스트릭트 사업이 B2C(기업과 소비자 간 상거래)로 확대되었다. 

제주에서 시작한 아르떼뮤지엄이 여수, 강릉 등 국내 3호점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해외에서는 어떠한가.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개관 이후 하루 2400여 명, 여수는 1300여 명, 강릉은 2900여 명이 관람하고 있다. 하루 평균 1200명 정도만 찾아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2022년 가을부터 홍콩, 북미,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 각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아르떼뮤지엄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홍콩, 12월에는 중국 청두(成都)에서 개관하고, 내년 상반기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뉴욕,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도 선보인다. 2025~2026년 싱가포르 등을 포함해 세계 각 도시에 30여 개 지점을 확장할 계획이다. 공간 임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조건 협의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해외 지점은 각각 법인체나 직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에이스트릭트는 디스트릭트와 무엇이 다른가.
파인 아트(fine art), 순수미술 분야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를 수용한 지 꽤 되었다. 그런데 순수미술 분야가 다소 보수적이다 보니 커머셜 디자인, 상업 디자인을 해온 디스트릭트의 이름으로 들어서기엔 진입 장벽이 높았다. 그래서 ‘아트(art)+스트릭트’, 에이스트릭트(a’strict)라는 별도의 작가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순수미술 시장에서 에이스트릭트는 신진 작가인 셈이다. 디스트릭트 직원들이 협업한 작품을 특정 개인의 이름이 아닌 아티스트 컬렉티브 ‘에이스트릭트’로 출품한다. 작품마다 협업한 직원들의 구성이 각기 다르기도 하다. 디스트릭트에서 제작하고, 에이스트릭트 이름으로 저작권 수입을 얻는 구조다. NFT로도 확장성이 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는 우리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실생활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공간이 점점 더 디스플레이 화되고 있다. 인터뷰 장소인 이곳도 회의를 위한 목적으로 쓰이지만 디지털아트를 선보이는 전시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집 안 베란다와 거실을 구분하는 커다란 창은 지금은 채광을 위한 용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벽에 아날로그 방식의 그림 액자를 걸어두었다면, 디지털 액자 같은 홈 어드바이스를 활용해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전송, 구독경제처럼 사업화될 수도 있다. 이런 디스플레이가 우리 생활 곳곳에 녹아들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디지털 콘텐츠, 디지털아트가 심심찮게 눈에 띄는 시대가 곧 온다고 본다.

‘최초’라는 타이틀, 디지털 미디어 아트 분야를 선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것 같다.
이제 주목을 많이 받으니 부담감이 있기는 하다. 개인적 행동이나 말도 그렇고, 회사의 행보에도 시선이 많이 쏠려 있으니 한 걸음 한 걸 음 잘 해나가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택에 대한 불안감은 없는 편이다. 나는 낙천적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누구나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대표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임직원들이 보수적 의견을 덧붙이면서 대표의 의견을 제어하고 견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표가 회의적이거나 보수적이면 새로운 변화, 물결을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대표로서 내가 잘 맞는 것 같다. 

<리더피아>의 고정 질문이다. 이성호 대표가 생각하는 리더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리더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보지 않으면 ‘책임을 진다’는 것의 함의를 모를 수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개인의 삶, 경제적 기반이 흔들릴지 모르는데 하나뿐인 아파트를 담보로 회사 자금을 융통한다는 건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동료 경영진이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직원들은 그 당시 내가 한, 끝까지 책임지려는 행동을 높이 사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팔로십(followship)도 생기고 그 덕분에 어려운 와중에 ‘웨이브’ 같은 것 해보자, 아르떼뮤지엄 해보자 할 때 팀워크를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모멘텀이 존재했던 것 같다. 
경험과 연륜이 많은 대표, 리더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대표로서 내가 설령 잘못되더라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이 많은 동료에게 울림을 주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디스트릭트가 되지 않았나 한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리더가 참된 리더, 좋은 성과를 만드는 리더 같다. 경험상 그렇다.  

글‧진행 남정희 / 사진 서대호 / 리터칭 이철진 / 스타일링 이서연 / 헤어·메이크업 이은정 /  자료 제공 ㈜디스트릭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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