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그리고 본질에 대한 고집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대중과 처음 만난 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친숙해진 셰프 겸 방송인 정호영. 평소 그가 운영하는 ‘우동 카덴’의 음식을 먹으며 그의 다양한 면모를 더듬곤 했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고, 인터뷰를 마치고 자주 먹던 그 우동을 먹었다. 묵직한 웃음이 나왔다.

수년 전, 유명 음식점 대표님이 서교동에 있는 맛있는 우동집을 추천받았다며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대기 줄이 길었다. 두 사람이 세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그분과 나는 깊은 국물 맛과 찰진 면에 감탄하며 먹은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그 집은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그곳이 정호영 셰프가 운영하는 ‘우동 카덴’이라는 것을, 무심하게도 그 후에야 알았다. 사람들은 그를 정호영 셰프라고 부른다. 그가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것은 방송 덕분이다. 그는 심지어 한 방송사에서 예능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그를 유명 셰프 겸 유명 방송인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촬영하기 위해 만난 그는 셰프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소위 촬영용 의상으로 반듯하게 다림질한 옷이 아니었다. 아마도 주방 아니면 사무실에서 일하다 나온 모양이었다.

 

 

카덴(花伝, 화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카덴은 가게 이름이다. 카덴이라는 이름을 기준으로, 일본 요리에 기반한 여러 음식점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 시작한 것이 ‘스시 카덴’이고 ‘이자카야 카덴’, ‘우동 카덴’ 그리고 이를 모두 합한 형태의 ‘이자카야 로바다야 카덴’, 마지막으로 ‘비스트로 카덴’이 있다. 일본에서 공부했던, 오사카에 위치한 쓰지조리사전문학교의 실습 실 이름이 카덴이다. 그곳에서는 하루는 홀에서 서빙하고, 하루는 테이블에 앉아 손님 입장에서 음식을 먹어보기도 하고, 그다음 하 루는 주방에서 요리를 내주기도 한다. 이렇게 계속 돌아가는 시스 템이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셰프로서의 자세를 정립해 준 곳 이라는 생각이 들어 항상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카덴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매장이 많다.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욕심이 좀 많았다. 이자카야에서 다 할 수 있는 요리지만, 좀 더 세분화해 전문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인력난이 제일 심한 것 같다. 현재는 하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관리를 잘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냥 물 한 잔 마시고, 그날 할 일, 스케줄을 확인한다. 그리고 매장에 먼저 가 재료 등 운영과 관련한 내용을 체크한다. 최근 제주에 우동 카덴을 오픈하는 등 이동 거리가 많다. 스케줄이 많아 가까운 날짜 중심으로 스케줄을 생각하고, 조금 뒤에 잡힌 스케줄은 생각 하지 않는다. 그것까지 생각하면 너무 복잡해 가까이 닥친 일부터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느낌으로 한다. 

카덴만의 차별적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단 가격을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책정하려고 노력한다. 차후에는 고급스러운 음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일본 요리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자카야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맥주 한잔 마시며 요리를 먹는 곳이다. 한국의 이자카야는 가격이 낮지 않다. 한국 소주가 없는 곳도 많다. 좋고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손님은 물론, 한 번 실패했던 내 경험에 비춰 운영하는 사람도 힘들 수 있다. 

 

실패한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독립 후 처음 한 것이 스시 카덴이라는 초밥 전문점이다. 하루 매출이 3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차이가 매우 심했다. 코스 요리를 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지만 손님 입장에 서 선뜻 가게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기준 1인 10만원 미만으로 판매했는데, 3명이 오면 기본 30만원 정도 하니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경영자 입장에서 원가가 상당히 비싼 것도 손님에게는 비싸게 팔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금태라는 생선은 한 마리에 최소 2만원이 넘는다. 그러면 적어도 5만원 이상으로 판매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카덴에서는 3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내가 사 먹어도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우동 카덴도 마찬가지다. 누구 나 즐길 수 있는 식당으로 꾸리려고 노력한다.

고객 입장에서, 줄 서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고 카덴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단 대중적으로 우동의 인기가 높다. 일본에서도 일반적으로 우동 집에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튀김 같은 것은 미리 튀겨 놓는다. 하지만 요리사가 힘들어야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고 믿는다. 직원들 에게 우리는 하루에 우동 500그릇을 만들지만 손님에게는 한 그릇 의 우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자신이 생각해도 아니다 싶으면 손 님에게 절대 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의 그런 노력을 고객이 알아주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식 요리를 하고 있다. 일식은 어떤 요리라고 생각하는가.

일본에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음식에 계절을 담는다. 재료는 물론 색감까지도. 가이세키 요리에는 계절마다 꼭 사용해야 하는 재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요리를 내지 않을 정도로 집착한다. 가격이 싸든 비싸든 상관없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나도 이자카 야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 재료를 못 쓰면 약간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6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 9년 연속 블루리본 서베이에 선정됐다. 정호영 셰프에게 이런 수상은 어떤 의미인가.

요리하는 사람 입장에서 반갑고 감사하다. 요리사로서 절대적 평가는 아닐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이런 평가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되 었다. 음식에 신경 쓰고, 손님에게 잘하면 이런 평가는 자연스레 뒤 따라오는 게 아닌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화장실, 와인 리스트 등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 조건이 우리 가게와 맞 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주어진 환경에 맞춰 열심히 하는 게 우선 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로 가보자. 예전에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셨다고 들었다. 보통 동네 한식집인데,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포장마차부터 함바 집까지, 어머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릴 때는 식당과 집이 같이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식당이었다. 방학이나 주말에, 그때는 어리니까 주방 일은 못하고, 홀에서 손님들에게 서빙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요리를 선택한 계기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다 입대 해 1998년 2월에 제대했다. IMF로 힘든 시기였다. 공부 쪽은 아니고, 기술 쪽으로 생각했다. 노력하면 되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신촌에 있는 요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장 친근한 환경이고, 또 어머니가 식당을 하시니까 어머니와 같이 운영 하며 발전시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머니는 크게 반대하셨다.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아들이 고생할까 봐 다른 직업을 택하기 원하신 것이다. 요 리 학원을 한 2~3개월 다니며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에 바로 어머니를 도왔나.

아니다. 홍대 인근의 조그마한 이자카야에 주방 보조로 취직했다. 그런데 주방장이 그만두며 혼자 남게 되었다. 나마저 그만두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고, 내가 그 식당의 메뉴를 알고 있어서 그냥 일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계에 부딪혔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주방을 혼자 맡기에도 그렇고, 요리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 았고. 그렇게 3년을 근무한 후 사장님 지인의 소개로 일식당에 취직하게 되었다.
일식당에서 일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들어갈 때 몸무게가 95kg이 었는데 석 달 만에 25kg이 빠졌다. 평소 체력이 좋다고 생각했는 데, 지하철 플랫폼에서 허벅지에 쥐가 나 쓰러졌다. 한 달에 고작 2~3일 쉬고, 근무시간도 길어 그랬던 것 같다. 힘들어도 성장해  가는 느낌, 그게 보여 견딜 수 있었다. 
 

일본 유학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어릴 때 막연하게 그 나라 요리는 그 나라에 가서 배워야 한다고, 그 나라 말을 알고, 그 나라 문화를 알면 요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리를 하다 보니 그런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커졌다. 그런데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일이니 과연 돌아와서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기로 결정했다. 일본어를 전혀 못 했다. 일본어 능력별 반 편성험을 위해 레벨 시을 봤는데, 백지를 냈다. 제일 낮은 반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꼴찌를 했다. 3개월마다 클래스가 올라가는데 그때 1등을 했다. 난생 처음 공부로 1등을 해봤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했다.

쓰지조리사전문학교 유학 생활을 좀 더 이야기한다면.

학비가 매우 비싸다. 야키니쿠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 식당이었는데, 설거지부터 시작해 김치 담그기, 소스 만들기까 지 고기 파트 빼고 다 했다. 4년 일본 유학 중 3년을 일했다. 금전 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일식당에서 일했을 텐데,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야키니쿠를 택한 것이다. 그게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지인 소개로, 주말에는 월급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수산시장 안에 있는 생선을 손질하는 식당에서 일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학교 수업이 없어 그곳에서 비늘 제거 등 생선 손질하는 걸 배웠다. 3년 동안 일하며 생선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2학년 때 유학생 중 유일하게 성적 우수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배우는 일식과 일본에서 배우는 일식, 어떤 차이가 있는가.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기본으로 제공하는 음식이 많아 버려지는 재료도 그만큼 많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다 주문 해야 하니 남기는 음식도, 버리는 재료도, 불필요한 시간 소요도 없다. 기본 제공하는 음식을 줄이면 메인 음식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주재료에 집중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다음에는.

귀국 후 일본인 주방장이 하는, 가이세키 전문점에서 3개월 정도 일했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스시효’에 면접을 봤는데 자리가 없어 바로 입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리가 났다며 연락이 왔다. 
스시효 안효주 대표에게 배운 게 무척 많다. 일본에서 공부하며, 나중에 이렇게 해야지 하던 것을 다 하고 계셨다. 새벽마다 시장에 직접 가고, 좋은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직원이 더 잘 먹어야 한다며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셨다. 들어간 지 한 달쯤 지나 요리 전체 책임자가 되었다. 초밥이 주메뉴지만, 초밥에 딸린 요리가 있다. 이 요리는 매일 바뀌는데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다. 사장님이 맛이나 담음새 등 여러 가지를 보시고 허락해야 손님에게 낼 수 있다. 그때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 

일본에서 공부하며 만든 음식은 한국 음식보다 간이 약간 세다. 레시피대로 요리하면 짜거나 단데, 안효주 대표가 그걸 잡아주셔서 실력이 좋아진 것 같다. 일본에서 공부한 책 서너 권을 매일 가방에 넣어 다니며 틈만 나면 복습하고 매장에서 어떻게 할지 노력하게 해주신 것도 안효주 대표님이시다.

독립은 언제 하게 됐는가.

스시효에서 딱 1년 근무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당시에 이자카야 붐이 일기 시작하며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왠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내 가게를 오픈하고 싶은 마음 이 들었다. 그래서 유학 동기들과 서교동에 ‘카도야’를 열었다. 3년 동안 같이 일한 후에 스시 카덴을 오픈하며 독립했다. 

 

스시 카덴은 정호영 셰프의 첫 식당이다. 어땠는가.

한 6개월 동안 1억원 정도 손실이 났다. 아예 캐주얼하게 했으면 좋은데 어중간했던 것이 실패 요인이었던 것 같다. 재료는 스시효 수준인데 가격은 그렇게 못 받았으니. 그렇다고 가격이 아예 싸지도 않으니 손님에겐 문턱이 높고. 그러다 보니 도미 한 마리 잡는 데도 고민이 되고…. 장사가 꾸준히 잘되면 재료를 편하게 더 쓸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 매출이 어느 정도 나와도 손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결국 이 실패를 통해 손님이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겠다고 생각을 전환했다. 처 음부터 가격이 비싸면 부담이 되니까. 그런 부담을 없애기 위해 이자카야로 바꾼 것이다.

새로운 메뉴 개발도 중요하다.

이자카야 카덴을 오픈한 후,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콘테스트를 했다. 1등은 뽑지 않았다. 대신 피드백을 했다. 직원들이 자기 음식을 먹어보며 자연스럽게 자기 요리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고, 개선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굴만두는 그렇게 해서 겨울철 정식 메뉴가 되었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부족한 게 있어 보완했다. 굴 향과 육즙이 빵빵 터진다.
2015년 <냉장고를 부탁해>를 시작으로 2021년 제28회 KBS 연 예대상 핫이슈 예능인상을 수상했다. 스타 셰프이자 유명 방송인 인데, 방송은 어떤 의미인가.
처음부터 방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나는 공식적으로 쉬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제주점 오픈 후에 는 더욱 바빠졌다. 그런 내게 방송은 주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리 프레시하는 느낌이다. 처음 <냉장고를 부탁해>를 할 때는 경쟁해야 하니 압박이 무척 심했는데, 요즘에는 경쟁이 아니라 약간 보너스 같은 느낌이다. 방송도 바쁘긴 하지만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음식 맛이다. 유명인이 한다고 하면 한 번은 오지만, 맛이 없으면 두 번은 오지 않는다. 대중에게 알려진 방송인이라 하더라도 맛은 내가 가장 중요 하게 생각하는 철칙이다.

맛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다.

1년 전 모 백화점 오픈 전에 입점하려고 한 적이 있다. 우리 메뉴를 그대로 하고 싶었는데 식당 구조나 상황 때문에 그걸 구현하기 힘들었다. 메뉴를 대폭 줄어야 하고…. 백화점에서는 서브 브랜드의 느낌을 원했는데 그건 우동 카덴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우동 카덴 이라는 브랜드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광교점을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폐업하고, 연희동 매장은 1년 동안 억 단위 손실을 입었다고 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그때 배달 음식을 해야 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배달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달 음식을 하면 조금 쉽게 팔 수 있겠지만, 신선도도 떨어지고, 또 매장 손님에게도 영향이 갈 것 같았다. 앞뒤가 바뀌는 게 아닌가. 그래서 결국 배달은 포기하고 대신 포장 판매를 했다. 독립할 때부터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아내는 항상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주변에 셰프를 꿈꾸는 이가 많다. 
요리사는 무척 힘든 직업이다. 남들 쉴 때 못 쉬는 건 당연하고, 급여도 낮은 편이다. 자기 매장을 가졌더라도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중간에 포기하는 이도 정말 많다. 그러니 왜 요리를 하려 고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자녀가 셰프가 되겠다고 해서 어떻게 해 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부모에게 일주일 동안 재료 구입부터 손질은 물론 치우는 것까지 다 시켜보라고 한다. 이 모든 걸 정말 즐겁게 하는지를 보라고 한다. 

어느 날 문득 요리사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아쉬움을 느낀 적은 없 는가.

그런 적은 없다. 사실 지금 매우 행복하다. 요리로 TV에 나올 만큼 유명해지기도 하고, 식당도 몇 군데를 운영할 정도이니.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 전 재산이 50만원도 안 됐었다.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유학할 때 월세 낼 돈 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가며 30분 동안 운 적도 있다. 그때와 비교 하면 지금은 성공한 삶 아닌가. 

직원에 대한 애정이 무척 큰 것 같다.

약간 짝사랑 같은 느낌. 정말 같이 오래 가고 싶은 친구가 많이 보인다. 내가 마음을 많이 주는데, 결국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나이 들어서까지 혼자서 이렇게 다 할 수는 없다. 오래 같이할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물론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 같이 하고 싶은 직원들이 많은 만큼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함께 일하길 꿈꾼다.
오래 같이 하고 싶은 직원들이 많은 만큼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함께 일하길 꿈꾼다.

 

젊은 세대와 어떻게 소통하는가.

나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주방이 뒤집힐 정도로 혼냈지만, 요 즘에는 한쪽 눈을 감기도 한다. 제주 매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숙소에서 생활하는데, 뭐 먹고 싶은지 물어본 뒤 원하는 메뉴 를 만들어주니 좋아한다. 회식 비슷하게. 술은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시고, 대신 음식은 많이 먹으라며 편하게 대하다 보니 소통이 조 금 더 잘되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해도 내가 얼마나 불편하겠나. 

정호영 셰프가 생각하는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스시효에서 근무하는 동안 안효주 대표님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 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내가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직원들에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대상 이 되고 싶다.

 

최승영 사진 이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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