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딱이다!” 카카오를 그만두고 메타버스 서비스를 창업하겠다는 말에 지인들은 그를 응원했다. 프리챌에서 아바타를 만든 전력부터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그가 일궈온 이력에 그만 한 메타버스 전문가가 없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지만 그의 남다른 생각과 근성을 알기 때문이다.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권승조. IT 분야 종사자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일반인에 게는 낯설다. 일반인에게 익숙한 그의 다른 모습이 있다. 바로 아바타, 라인 프렌즈, 카카오프렌즈. 2000년,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 후 프리챌에 입사해 아바타를 만들고, 2002년에 네이버디자인센터장이 되었으며, 2011년에는 NHN Arts 대표가 되었다. 2013년에 라인 플레이 대표이사가 되었고, 2018년에 카카오프렌즈 대표이사와 카카오IX 대표이사, 2020년에는 카카오 수석 부사장이 되었다.

누가 봐도 탄탄대로 승진이다. 그리고 화려한 경력 뒤에는 경력 못지않은 대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돌연 지난 7월에 퇴사했다. 거의 모든 궁금증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Q. 카카오, 왜 그만두었는가?

A. 그런 질문은 퇴사 후에 많이 받았다. 창업을 결심 후 주변 친한 분들에게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반응은 ‘왜 나가냐?’가 아니라 ‘잘했다’였다. 그래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더 늦으면 이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 같다. 김범수 의장님이 네이버가 유례없이 성장할 때 네이 버를 떠나며 이런 말을 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그 말이 크게 와닿았다.

 

Q. 무슨 일을 할 것인가?

A. “뭐 할 거야?”라는 물음에 “메타버스 서비스 만들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너랑 딱이다”라고들 했다. 메타버스를 말하면 가장 먼저 아바 타을 말한다. 20년 전, 2000년에 프리챌에서 아바타라는 것을 만들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다 보니 이와 관련한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네이버에서도 카카오에서도 아바타 프로젝트를 진행했었 다. 그래서 딱 어울린다고 답했을 것이다. 메타버스. 장르라고 해야 할지 앞으로 펼쳐질 세상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메타버스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일들이 현재에 보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새로울 게 없는 세상에 그는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 비결은 뭘까. 카카오톡으로 시작된 카카오 1.0 은 메신저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확장한 2.0을 거쳐 시너지를 통해 성장 기회의 확대와 글로벌 진출 시기인 3.0으로 진화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인 사자(라이언), 개(프로도), 고양이(네오), 복숭아(어피치), 단무지(무지), 콘(공룡) 등 인기 캐릭터를 통해 친근감을 바탕으로 브랜드 지명도와 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온라인 이모티콘과 오프라인 굿즈 판매로 상상보다 훨씬 큰 수익을 창출했다. 그 중심에 카카오IX의 권승조라는 인물이 있었다.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Q. 메타버스와 독립, 사건 혹은 계기가 있었나?

A. 내가 주도해서 카카오에서 메타버스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이름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예전에는 내가 속한 회사 이름으로 만들었는데, 내 회사 이름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카 오에서 만들면 안정적인 지원을 받아 성공할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혼자 힘으로 하면 성공 확률은 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은 무척 클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함께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창업이라는 게 혼자 할 거야, 해서 되는 게아니다. 다행히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 후배, 친구가 같이하겠다고 해서 용기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리더피아> 인터뷰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Q. 흔쾌히 함께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나 빼고 여섯 명인데 네이버, 카카오, 넥슨 출신이다.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다. 흔쾌히 함께한 데는 대부분 나랑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라서 나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 경험을 같이했다는 점일 것이다. 실패 경험도 많았다. 메타버스라고 하면, 10~20 대가 타깃이라 젊은 직원들이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한 명 빼고 40 대다. 그 한 명은 30대이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있다.

 

Q. 메타스케일은 어떤 회사인가?

A. 직관적으로 메타버스를 하는 회사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메 타’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 삶, 실제 화면을 작은 화면에 넣어야 하는, 리스케일해야 하는 것이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해 ‘스케일’ 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아직은 PC나 다른 디바이스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 중이다.

 

Q. 메타버스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A. 어떤 분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게 메타버스라고 하고, 어떤 분들은 안경을 쓰고 하는 것을 메타버스라고 한다. 나는 무언가를 정해놓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경 쓰고 하는 것, 사진 찍어 올리는 것만 하는 것과 같은 한계를 두지 않았다. 서둘러 결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은 전체를 둘러보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단계다.

 

Q. 어떤 식으로 구현하려 하는가?

A. 메타버스로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우리의 공감대는 메타버스라는 게 만들어졌을 때 이게 실제 생활, 우리 내부에서는 유니버스라고 하는데, 실제 생활을 대체하거나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니버스와 메타버스가 공존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맞췄 다. 이것도 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실과 단절되어 있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역할을 수행하는 놀이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형태의 게임)는 많은 사람이 같은 시간에 모여 미션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현실과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인스타는 실제 나와 많이 닮은, 물론 인스타에서는 다른 느낌을 내려고 하는데, 현실과 메타버스가 공존했으면 좋겠다.

 

Q. 메타스케일의 방향성이 정해지기 전에 위메이드에서 투자를 받았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 궁금하다.

A. 온전히 우리 팀을 보고 한 것 같다. 저 팀이라면 뭔가 하나 만들어낼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직원이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한 지 근 2년이 다 되었다. 나는 매일 출근했는데 지난 5월 혼자 칼국 수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위메이드 의장님, 대표님, 부사장님 세 분이 앉아 식사를 하고 계셔서 인사를 했다. 부사장님 빼고 나머지 두 분은 가시고, 부사장님이 내게 와서 “너 혹시 창업 생각 없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은 있어요. 그런데 체급이 좀 무거운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했더니 “얼마 필요하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당연히 내 사업을 할 때 모두 내 돈으로 하는 것도 좋지만 투자를 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0억~200억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드렸다. 다음 날 그분께 전화가 왔다. 큰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기획서를 보낸 일도 없는데. 그래서 나도 놀랐다.

 

위메이드가 메타스케일에 투자한 것에 대해 언론은 이런 보도들을 했다. 1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버디버디’ 서비스 노하우를 지닌 위메이드와 Z세대를 타깃으로 메타버스 서비스를 준비 중인 메타 스케일이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메타스 케일의 권 대표는 “스토리 기반의 인터랙션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개념의 메타버스 서비스를 선보 이겠다”고 했고,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발맞춘 혁신적인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도록 메타스케일과 다각도로 협력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티키타카가 딱 들어맞는다. 스마트폰 케이스며 시곗줄까지 그는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했다.

사진 이승무
사진 이승무

Q. 투자금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A. 우리 팀이 3년 정도, 3개의 프로젝트를 맘껏 해볼 수 있는 사이즈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금액이라면 올인할 수 있다. 창의력이라고 해야 하나, 크리에이티브, 재미있는 것은 위축된 상황에서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잘 안 되더라도 빨리 접고 나올 수 있는.

 

Q. 메타버스의 전망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된다는 기사는 많이 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와닿은 것은 지난 6월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사내 발표한 내용이 있었다. ‘메타버스란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다. 이미 시작되었다. 페이스북은 이 선언부터 메타버스 회사다’라고 선언했 다. 어떤 기술적 진보보다 코로나가 세상을 많이 바꿨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도 개념화되고 있고 기업들도 움직인다. 예를 들면 카카오만 하더라도 회사 출근 안 한 지 2년이 되어간다. 화상 회의를 할 때 처음에는 적지 않은 직원들이 회의가 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에 있든 카페에 있든. 회사 일은 문제없이 돌아간다, 어떤 직원들은 오히려 집중력이더 높다고도 한다. 내가 아는 미국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회사는 샌프란 시스코에 있는데 하와이 가서 일한다.

 

Q. 비대면 업무 외에 일상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코로나 때문에 바뀐 게 너무나 많다. 줄 서서 먹는 맛집도 언제든 배달 앱을 통해 클릭 한 번으로 먹을 수 있는 시대다. 줄 서서 영화 예매를 하지 않아도 보고 싶은 영화를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이미 시작이 된 것 같다. 그걸 메타버스라고 얘기하는 것 같고. 그걸 확장해보면 온라인 콘서트도 할 수 있다.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1 세대 서비스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메타 버스는 지역 기반이 없다. 스마트폰 때문에 PC 인터넷보다 훨씬 진화될 것이다.

 

권 대표의 이력을 보면 시한폭탄이 떠오른다. 당장 터지지는 않지만 곧터질 것 같은. 사실 그는 UX 디자인과 아바타,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의 전문가로 꼽힌다. 카카오 합류 전에는 5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한 글로벌 아바타 소셜 커뮤니티인 라인플레이의 탄성과 성공을 이끈 인물이다. 2011년 NHN Arts 대표이사로 부임해 라인 플레이를 탄생시키고 글로벌 서비스까지 성공으로 이끌었다. 출시 1년 만에 이용자는 무려 1300만 명 돌파. 회사명도 라인 플레이로 바꾸며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이를 통해 일본과 동남아시아, 미국 등에서 5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후 카카오프렌즈 대표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콘텐츠 개발과 사업 확대를 통해 카카오의 글로벌 IP 비즈니스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서비스와 IP 콘텐츠의 고도화 그리고 일본, 미국, 중국 등 해외 사업도 확장시켰 다. 그는 카카오프렌즈 사업을 맡아 1년 만에 50퍼센트 가까운 매출 성장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그의 과거 이력을 현재와 미래에 빗대면 시한 폭탄 아니겠는가.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Q. 메타버스 서비스가 이미 있다. 메타스케일은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는가?

A. 추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 메타버스의 이미지가 인간적이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더 인간적인, 더 인간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을 전제라고 한다면, (온라인에 서라도) 다시 만났을 때 훨씬 더 기쁜 역할을…. 예를 들면, 친구들과 우정을 더 돈독히 할 수 있는 것. 둘이 만나 대화를 많이 하면, 두 사람의 우정 포인트가 올라가는 것이다. 레벨이 올라가면, 그 레벨에 따라 할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게임 요소를 접목해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강화해주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기법을 활용해 소셜 네트워킹을 강화하려고 한다.

 

Q. 친구, 흥미롭고 이해가 쉽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A. 관찰을 많이 했던 것 같다. 10대들이 쓰는 것, 그들의 앱을 조사해보니 그런 게 필요한데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을 보면, 열심히 하면 보상이 있다. 친해지면 친해진 만큼 보상해주는 아이디어.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자주 만나고. 나만 하더라도 내 위치를 공유하는 게 편하지는 않다. 그런데 10대는 다르다. 정말 친한 친구들끼리 위치를 공유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적다. 프라이버시 개념도 약하다. 실제로 인스타그 램을 보면 인스타그램에 일기를 쓴다. 뭐 먹었다, 버스 탔다…. 위치를 공유하며 생기는 교감. 인터랙션을 시작할 수 있는. 나는 이런 부분을 핵심으로 보고 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정말 친한 사람, 서비스를 통해 더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

 

Q. 대학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

A. 중고등학생 때는 그리는 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은 직업이나 취업설명회가 다양하게 잘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할 수 있는 것도, 정보도 부족했다. ‘만드는 게 뭐야?’라고 질문을 해보니 건축, 자동차 디자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생 때는 꿈을 결정해야 하는 단계인데 너무 바빴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 때 인터넷이라는 게, 학교에 컴퓨터실이라는 게 생겼다. 인터넷이 재미있었다.

홈페이지 알바를 정말 많이 했다. 물론 처음에는 대학원이나 3~4학년 선배들이 일을 따오면 그중 일부를 했었는데, 선배들이 일이 많아지면 나보고 “이건 네가 해봐”라며 전체를 맡기기도 했다. 돈을 버니 중독이 더라. 그땐 이런 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수입이 좋은 편이라 열심히 하느라 바빴다.

 

Q. 대학 졸업 후에는?

A. 2000년에 프리챌에 입사해서도 계속 바빴다. 꿈에 대해 생각해본 게없었던 것 같다. ‘다시 건축 회사, 자동차 회사에 입사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인터넷 시대가 뭔지 몰랐던 초기에는 커뮤니티 개념도 없었다. 게시판을 커뮤니티라고 해야 하나. 그 이후에 싸이월드 정도. 지금 같은 모습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블로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었는데 사람들이 ‘블로그’라고 하니까 못 알아들었다. 10대들은 블로그를 모른다고 한다. 재미있는 얘길 들었는데, 요즘 10대들은 블로그를 많이 안 썼다. 인스타그램, 페북으로 대체되었는데 네이버 블로그가 다시 10대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이렇게 글을 길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어?’라는 것이 다. 10대들은 블로그의 ‘글-사진-글-사진-글’ 포맷을 처음 본 거다. 보통은 인스타나 페북을 사용하니 ‘사진 다섯 개 올리고 끝’, ‘짧게 글 쓰고 끝’ 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10대에게는 글을 길게 쓰는 게 낯설고 힘들다는 얘기다.

IT업계의 거물, 이해진과 김범수가 권승조 대표의 입사를 축하하며 준 책.
IT업계의 거물, 이해진과 김범수가 권승조 대표의 입사를 축하하며 준 책.

Q. 성공 이력이 많다.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학교에서처럼 졸업 후 사회생활도 정말 바빴다. 성공만 알려졌는데 실패도 많았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기업문화 1등으로 치는 게 벤처로 시작한 회사라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내부에서 실패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실패하면 ‘조금 쉬었다가 새로운 걸 다시 하자. 최선을 다했잖아’ 이런 문화 덕분에 이렇게 성장한 것 같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까, 개발자들이 하는 일이다 보니. 10년은 PC 인터넷 시절. 그 이후 10년은 모바일 시대. 이만 한 것을 요만 하게 넣는 것뿐만이 아니다. PC 서비스는 PC 앞에 있어야 하는 게 전제인 서비스이고, 모바일은 항상 온라인 상태다. 그러니 새로운 서비스가 굉장히 많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PC에서는 불가능한 서비스다.

20여 년 일했는데 정말 바빴고, 재미있었다. 아마도 내 옆에 있는 분들도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일이 정말 많고, 그만큼 성취감도 굉장히 컸고, 꿈을 이룬 느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쌓이다 보니 방향을 틀어 현대자동차 갈 거야, 이런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Q. 권 대표에게 성공은 어떤 의미인가?

A. 이 질문이 어렵다. (침묵) 나에게 성공 경험이란, ‘사람을 얻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얘기를 많이 하고 마음이 맞더라도 어렵게, 힘들게 만들어낸 성과는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성공과 실패를 같이한 건 사람이다. 지금 함께하는 친구들이 나와 같이할수 있는 것은 과거의 성공 경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Q. 메타버스 이미지가 젊다. 그래서 메타스케일의 이미지도 기대된다.

A. 고민이 많은데, 상상해보면 아마도 내년에는 한국, 미국, 일본 세 군데 회사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국, 미국, 일본이 함께 일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가장 적절한 호칭으로 영어 이름을 쓸 것이다.

내 영어 이름은 조니. 이 영어 이름이 호칭이 된다. 일본과 한국은 시차가 없지만, 미국은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율시간 근무제가 가장 책임감을 줄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영어 이름과 자율근무 제. 두 가지 정도 결정했다.

 

Q. 현재는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

A. 초반이다.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게 없으면 조립하는 데 안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다 같이 모여 일하는 것은 주 2회. 그동안 사무실이 없어서 영상으로 만났는데 사무 실을 만들고 나니 나는 구식이라 계속 나오게 되더라. 일주일에 두 번만 나오면 되는데 전부 나온다. 마음이 맞고, 눈빛만 봐도 안다는 게 이런 거구나. 될 것 같다.

 

메타스케일은 지난 8월 16일,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사무실을 오픈했다. 쟁쟁한 IT 전문가들이 모여 남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되지만 실상은 휑하 다. 물론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런 멋진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싶다. 10석 규모의 넓지 않은 사무실. 흔한 대표 방도 없다. 벽면을 따라 놓인 책상 중 하나가 권승조 대표의 자리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대표와 직원 간에 친밀하다는 것. 혹은 그러기 위한 권 대표의 노력. 그런데 권 대표의 자리가 안쪽 창가가 아닌 입구 쪽에 있는 것을 보면 전자가 맞는 것 같다. 또 하나는 현재의 메타스케일의 모습. 그들이 꿈꾸는 메타버스는 지금의 사무실처럼 아직 빈 공간이다. 갓 시작한 실제 공간과 메타버스의 공간이 어떻게 꾸며질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사진 이승무 헤어&메이크업 포레스타 블랙 의상 협찬 KITON

Q. 어떤 사람이 리더라 생각하는가?

A. 내가 이렇게 성장한 이유를 보면, 기회를 많이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리더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일을 찾았을 때 언제든 할 수 있고, 그것을 지지하고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리더가 가져야 할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내가 노력했던 부분은, 가능하면 지시 사항으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말투 같은 것. 진행하는 중간에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말은 금물이다. 실제 얘기할 때도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신경을 쓰지 않았나 싶다. 또 막힐 때 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던 것 같다. 편한 친구나 동료 느낌으로. 극히 신경 썼던 것 같다. 지시 사항으로 느껴지면 재미가 없다. 이 친구가 생각하는 방향이 틀리더라도 끝까지 가보게 한다. 그런 걸 많이 신경 썼다.

 

Q. 함께 일했던 구성원들은 권 대표에 대해 뭐라고 표현할것 같은가?

A. 지시를 잘 했던 리더라고 하면 안 되는데.(웃음) 방금 신경 써서 얘기 했으니 알아줬으면 좋겠는데.(웃음) 몇 가지 생각해보면 따뜻한, 친구 같은, 재미있는. 이 정도로 꼽지 않을까. 술 좋아하고. 사실 일하며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24시간 서비스가 되어야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바로 대응해야 하고, 오픈 전에는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나름 그렇게 노력했다.

 

Q. 성공 뒤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A. 열심히 만든 게 중간에 잘 안 된다든지, 세상에 탄생시켰는데 반응이안 좋아 서비스를 종료해야 할 때는 아무래도 힘들다. 그 과정에서 같이 개발했던 팀원들과의 관계가 훨씬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 헤어지는 순간이 힘들었던 것 같다. 일정 부분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했던 게 많았 으니 내가 느끼는 책임감이 컸다. 그럴수록 즐겁게 마무리하려고 노력 했던 것 같다. 술 마실 때 일 얘기 전혀 안 하고. 물론 일이 너무 많아 끝나면 또 기다리고 있어 여유롭게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게 많지는 않았다.

 사진 이승무
 사진 이승무

Q. 권 대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력자가 되고 싶은가?

A. 언제든 연락하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 면에서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조력자.

 

Q. 말은 그렇게 하지만 더 유명해지면 만나기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닌가?

A. 인터뷰 기사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 변경할 수 없을 것이다. 기록이 남으니 이제 내가 노력해야 한다.

 

Q. 개인적인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가?

A. 계속 일을 해왔다. 정말 일 중심으로 살았다. 여행이나 음악 등은 일반적인 수준. 하루 종일 영화 얘기 해볼까, 이런 수준은 아니다. 다만 회사 다닐 때 해외 업무를 많이 하다 보니 해외 출장이 많았다. 업무 시간 외에 그 나라와 문화, 사람을 알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곤 했다. 한창 때는 1년의 절반은 해외에 있었다. 주말에는 가능한 한 많이 걸어 다녔 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그 지역에만 있는 문화를 경험하려고.

 

Q. 그런 모습에서 권 대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가?

A. 내가 가진 습관 중에 그런 게 있다. 결정하는 기준. 좋은 것,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왜 좋은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결과물은 그걸 만든 사람들의 고민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입어보고, 먹어보고, 왜 맛있다고 생각하는 지, 가격이 합리적인지, 멋진 건물 앞에서 만일 내가 짓는다면 어땠을까, 좋은 걸 왜 이렇게 만들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 걸 스스로 해보는

지인이 만들어준 메타스케일 회사 CI. 앞으로 메타스케일이 만들어낼 메타버스가 자못 궁금하다.

것 같다. 습관적으로.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더 보러 다니고, 듣고, 경험 했다. ‘내가 다시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까?’ 이런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행을 같이 가는 사람들과도 이런 얘기를 하고. 뭔가 판단의 기준을 정할 때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회의처럼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고.

 

Q.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취향이 있는가?

A. 고집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 스스로 대중적인 면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것 같다. 어떤 장르를 편식할 거야, 영화를 보는 취향은 어떨 거야, 옷이나 컬러는 뭘 좋아할 거야…. 하지만 나는 멜론의 톱 100의 음악을 듣고, 방송에 나온 맛집도 가보고, 인기 있는 드라 마를 넷플릭스로 몰아 본다. 나는 내가 만든 서비스의 잠재 고객이 어떤걸 좋아하는지 모르고, 혹은 직원들과 다른 세상에 살면서 이런 일(메타 버스)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취향을 고집하기보다는 대중 적인 취향을 다양하게 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Q. 메타스케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꿈은?

A. 2000년 정도부터 한국의 IT기업에 몸담았다. 한국 IT기업의 로망은 해외에서의 성공, 해외 진출이었다. 현재도 훌륭한 서비스가 상당히 많은데 거의 국내에 한하고 있다. 사실 시도도 굉장히 많이 했다. 의지만큼 투자도 많이 했고. 이런 프로젝트의 꽤 많은 부분에 참여했다. 네이버의 해외 진출, 아무래도 내가 도전적인 일들을 도맡아서 하다 보니, 해외 진출 프로젝트 기회도 많았고, (하고 싶다고) 손도 많이 들었다. 성과가 다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게 쌓여서 조금씩 나가기 시작했다. 카카오 재팬의 만화 앱 ‘피코마’는 일본에서 1등을 했다. 라인도. 이런 성공 사례가 슬슬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꿈과 목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서비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걸 메타스케일에서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에 법인 설립 작업도 하고 있다. 출발은 한국에서 하고 있지만 일부는 일본, 일부는 미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메타버스 개념이라 가능한 것 같다. 이디지털 세상 안에서 커머스 영업이나 화폐까지 진화될 것이다. 전 세계 사용자들이 즐겁게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나는 따뜻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캘리포니아 같은 곳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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