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최종 목표는 본인보다 훌륭한 제자를 키우는 일이다. 홍칠공은 비록 거지들의 왕이었지만, 천하를 지팡이 하나로 주유하며,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들을 키워냈다. 홍칠공 같은 사람이 시대의 참 스승은 아닐까?

김우정 스토리텔링 디렉터, 대종상영화제 총감독

안내와 조작은 다른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 中

스승이란 무엇인가?

사부는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다. 좋은 스승은 찾기 힘들다. 좋은 제자도 찾기 힘들다. 깨달음은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 제자는 빨리 배우기를 원하고, 스승은 오래 가르치기를 바란다. 이 간극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스승과 제자는 만나기 어렵다.

영웅문은 홍콩의 소설가 ‘故 김용’의 3부작 무협 소설이다. 김용의 영웅문은 동서양 수십 개국에 번역됐으며, 국내에서 8백만 부, 대만에서 1천만 부, 중국에서 1억 부 이상이 팔렸다. 1부의 주인공은 곽정이다. 그의 모험담은 스승을 찾는 여정이다. 곽정은 여러 스승을 만나 영웅으로 성장한다.

곽정은 몽골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곽정은 6살 때 첫 스승인 ‘제베’를 만난다. 어느 날 곽정은 패잔병이 되어 천막으로 도망온 신궁 ‘제베’를 숨겨준다. 그리고 채찍에 맞으면서도 제베의 은신처를 발설하지 않는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사제지간이 된다. 제베는 실존인물이다. 칭기즈칸이 가장 신임했던 사준사구(四駿四狗) 중의 한 명이다. 서양에는 화살 백작으로 알려져 있다.

제베는 본래 몽골의 타이치우트 부족 출신으로, 칭기즈 칸과 대립하던 타르쿠타이의 부하였다. 쿠이덴 전투에서 칭기즈 칸을 저격해 목을 맞춰 죽음 직전까지 보냈지만, 마유주를 마시고 기적적으로 회복한 칭기스 칸에게 패배해 포로로 붙잡힌다. 칭기즈 칸은 포로임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제베의 태도를 훌륭히 여겨 회유한다. 곽정은 첫 번째 사부였던 제베에게 몽골의 병법과 말타기, 활쏘기 등을 전수받는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당당한 태도도 물려받았다.

당신보다 뛰어난 제자가 있는가?

몽골을 떠난 곽정은 두 번째 사부 강남칠괴를 만난다. 강남칠괴는 양쯔강 이남 출신으로 이뤄진 7명의 무림 고수들이다. 강남칠괴가 곽정의 스승이 된 이유는 내기 때문이었다. 법화사에서 구처기와 대결한 강남칠괴는 단천적의 계략에 빠져 패배한다. 그리고 곽정을 맡아 가르쳐 18년 후에 양강과 실력을 겨루자는 내기를 한다. 이런 연유로 곽정은 강남칠괴에게 무공을 전수받는다. 강남칠괴 7인의 무공은 모두 달랐다.

다양한 사부들의 가르침을 한 번에 받아야 하는 곽정의 수련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강남칠괴는 초절정의 고수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리를 중시했다. 훗날 북쪽의 의협이라 불리는 곽정의 성격은 강남칠괴의 가르침이 기초가 됐다. 기술보다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이 인격이다. 인격이 완성돼야 기술을 배울 자격이 생긴다. 이후 강남칠괴를 떠난 곽정에게 초절정 고수인 ‘마옥’을 스승으로 모실 기회가 찾아온다.

마옥은 전진교의 2대 교주가 되는 인물로 천하오절 중의 한 명인 왕중양의 수제자였다. 강남칠괴에게 배운 무공이 크게 늘지 않아 상심하던 곽정은 마옥을 만나 내공 심법을 배우고 자신감을 되찾는다. 마옥은 첫눈에 곽정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단 한 번의 가르침으로 곽정이 고수가 될 길을 터준다. 마옥은 곽정의 자신감을 채워준 스승이다.

영웅문에 등장하는 천하오절이란 무림 비급 구음진경을 놓고 화산논검을 벌였던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들이다. 그 다섯 고수는 각각 중신통 왕중양, 동사 황약사, 남제 단지흥, 서독 구양봉, 북개 홍칠공이다. 이 중 홍칠공이 마옥 이후 곽정의 스승이 된다. 훗날 곽정은 천하오절의 한 명인 북협이 된다.

홍칠공은 천하오절의 한 명으로 개방의 방주다. 실제 이름은 홍가의 일곱째라는 뜻인 홍칠인데, 강호의 사람들이 그의 뛰어난 의협심에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이름 끝에 공자를 붙여 부르기 시작하면서 홍칠공이 됐다. 그는 제자 키우기를 매우 싫어했는데, 곽정의 여자 친구 황용의 속임수로 절세 무공인 항룡십팔장을 곽정에게 전수하게 된다. 그렇게 곽정은 절세 무공을 배운다.

홍칠공은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스승이었다. 겉으로는 제자들을 골탕 먹이기도 하지만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홍칠공 같은 스승을 만난 제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수준에 오를 확률이 높다. 스승의 최종 목표는 본인보다 훌륭한 제자를 키우는 일이다. 홍칠공은 비록 거지들의 왕이었지만, 천하를 지팡이 하나로 주유하며,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들을 키워냈다. 홍칠공 같은 사람이 시대의 참 스승은 아닐까?

멘토, 훈계 말고 조언하는 사람

멘토는 조언자다. 멘토(mentor)란 단어는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가면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친구인 ‘멘토’에게 맡겨, 자상한 선생님이자 훌륭한 조언자로서 왕의 아들을 제왕으로 훈련시킨 일에서 유래했다. 이후 사람을 훌륭하게 조련하는 사람을 ‘멘토’라고 부르게 됐다. 멘토링은 경험 많은 선배가 후배들을 지도하고 조언하는 활동이다.

멘토도 자격이 필요하다. 멘토의 기본적인 자질은 풍부한 경험이다. 창업을 안 해본 사람이 창업 멘토링을 하고, 경영을 안 해본 사람이 경영 멘토를 자처하고, 자기 브랜드를 성공시켜 보지 못한 사람들이 브랜딩에 훈수를 두는 일은 잘못된 멘토링이다.

나도 가끔 후배들의 멘토링 요청을 받는다. 술 한잔 얻어먹으며 고민을 들어주는 수준인데,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오늘 나와 상담한 것처럼 다른 분들과도 상의하라는 것이다. 특히 부모님과 배우자와는 반드시 상의하라고 조언한다. 가족은 당연직 멘토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조언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 외에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라면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멘토링은 티칭(teaching)이나 컨설팅(consulting) 보다 결정 관여도가 낮다. 상담(counseling)보다는 관여도가 높지만 퍼실리테이팅(facilitating)보다는 체계적이지 않다. 결국 멘토링은 해답을 던져주는 일이 아니라, 멘티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일이다. 멘토링은 간섭이 아니라 조력이다.

 

최근 나는 새로운 멘토들을 만나고 있다. 바로 후배들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신체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몸의 회복력이 젊은 시절만 못해지고, 그러다 보면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좋아지고, 행동이 줄고 생각은 굳는다. 그래서 찾은 해법이 후배들의 조언을 구하는 일이었다. 후배들의 멘토링은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위대한 멘토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멘토링에 나이 제한은 없다. 오직 겸손함이란 자격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겸손한 리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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